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음악에 관한 글을 주로 쓰는데, 하키에 대해 써 봤습니다. 아주 부끄럽지만 공유해봅니다.
제가 하키에 관해 쓴 부분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3년, 데이비드 베컴을 무척이나 사모하던 학생이었던 나는 축구게임을 할 때면 항상 그가 속한 팀을 골라 플레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통에 그의 사진을 붙이고, 교과서 겉표지나 책상 등에 그의 이름을 적을 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나를 베컴교의 교주, '베컴교주'라 불렀다. 그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베컴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잘생긴 외모와 정확한 킥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플레이는 매우 귀족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장에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열심히 공을 차던 아이였기에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시켜 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좌절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때이기에 그러하리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운동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며 부모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다. 몇날 몇일을 말도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당시에 나보다 훨씬 축구를 잘 하던 친구는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축구를 꾸준히 하였는데, 그 친구는 결국 대학 졸업 후에 프로선수가 되지 못했다. 그 친구를 보며 그때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에게 어느정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같은 놈이 해봐야 그 친구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6년에 스무살이 되면서 더 이상 강압 속에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지니 하고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다. 그 중에 하나가 스포츠를 보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보고 싶어졌다. 마침 박지성 선수가 세계 최정상의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유럽축구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져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서점에서 유럽리그 선수들의 사진과 능력치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스카우팅 리포트'도 구입하여 열심히 선수들을 분석했다. 축구감독을 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누구하나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느 분야에 뛰어난 식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스무살은 아침에 실컷 자고 새벽에 유럽축구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6년은 또한 일본에서 뛰고 있던 이승엽 선수가 지바 롯데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을 하던 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 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인기가 많은 구단이며 모든 스포츠를 통털어 일본을 대표하는 구단이다. 일본 고교리그 선수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요미우리의 4번 타자가 되거나 요미우리의 선발투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요미우리 선수들은 이동시에 늘 정장을 입도록 되어 있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덕아웃에서 물도 옛 방식대로 주전자로 마시게 되어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구단답게 체면과 전통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런 팀으로 이승엽이 이적하여 4번타자가 되었다. 요미우리의 4번 타자는 계보가 있을 만큼 책임이 막중한 자리며 아무나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더해서 축구는 한 주에 많아 봐야 두경기를 하지만 야구는 일주일에 여섯번 경기가 있고, 일본의 시간은 우리와 같기 때문에 매일 저녁을 먹으면서 이승엽의 경기를 챙겨보다 보니 자연스레 야구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야구와의 첫 인연은 98년으로 거슬러간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야구를 하는 것 또한 좋아했다. 태권도도 무척 열심히 했으므로 나는 결국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당시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IMF 외환위기의 침체된 국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그러나 12살의 나에게 그런 사회적인 것이 보일리 없다. 그저 티비에서 박찬호의 경기를 해주니 보는 것이다. 외국인 타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투수가 공을 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린 나에게도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LA 다저스에는 박찬호 외에도 노모 히데오라는 일본인 투수가 있었는데, 공을 던지는 폼이 굉장히 특이하다. 몸을 뒤쪽으로 한껏 뒤튼 후에 던지는데 그게 내 눈에는 무척 멋져보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 놀이터에는 나를 포함해 같이 야구를 하던 친구들이 너댓명 있었다. 한 명이 공을 받는 포수를 하고, 한명이 공을 던지는 투수, 한명이 공을 치는 타자를 한다. 그럼 나머지 사람이 타자가 친 공을 쫒아가 받는 일종의 수비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할은 순서대로 바꿔가면서 한다. 나는 스스로를 106동의 노모라고 떠들어 대며 노모 히데오의 폼을 따라하여 공을 던졌다. 노모의 폼으로 공을 던지면 다른 친구들을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였는데, 나는 노모의 폼으로 공을 던지면 공이 더 잘 던져졌다. 친구들도 나를 보며 공이 빠르다고 추켜세워주니 기분이 몹시 좋았다.
야구를 보면서 축구와는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야구가 더 좋아지게 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대체로 야구의 미학이나 철학에 관한 것이다. 야구라는 종목은 1회부터 9회까지 최소한 27번의 공격 기회가 보장된다는 점, 모든 구기 종목은 공이 들어가야 득점이 되는 반면에 야구는 사람이 들어와야 득점이 된다는 점, 득점을 하려면 1루, 2루, 3루를 차례대로 거쳐 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점, 좋게 말하면 지름길 나쁘게 말하면 편법인 도루가 있다는 점 등 야구에서 인생에 비유될 수 있을 만한 많은 부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를 포함하여 다른 스포츠 또한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아니, 모든 스포츠가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그러나 유독 야구에 끌린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스포츠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야구에서 느꼈기 때문이리라.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다시 말해 깊이 있게 보려면 알아야 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더욱 야구가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꽤나 현학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 2017년, 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야구보다 더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포츠를 만난다. 어느날 티비에서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여러명의 미국과 캐나다 출신의 선수를 귀화시켰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래서 과거에는 꿈도 못꾸던 팀들을 꺾으며 3부리그에 있던 대표팀이 1부리그로 올라가는 기적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하키에는 국가대표들 간에도 실력차이에 따라서 리그를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조차 최약체로 3부리그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몇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실력이 높은 리그인 NHL출신의 감독을 영입함과 동시에 선수들도 귀화시키면서 엄청난 속도로 1부리그에 진입했다. 이렇게 가파른 성장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세계 아이스하키 협회인 IIHF에서도 대한민국이 하키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평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인기종목이지만 국내에서는 비인기종목인 하키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았을 때, 몬트리올의 하키팀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면 시내에서 광인(狂人)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일종의 난동아닌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봤다. 그들은 그토록 열광하는 하키가 국내에서는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스포츠다. 국내에 프로팀이라고 해봐야 3개 팀이 전부다. 이런 상황이 나를 더욱 하키로 끌었다. 찾아보니 마침 '대명 킬러웨일즈'라는 팀이 내가 사는 인천에 연고를 두고 있었고, 때마침 그 주말에 인천에서 경기가 있는 상황이었다. 티켓값이라고 해봐야 전 좌석 8천원이고, 인천시민이면 50%를 할인해준다. 4천원으로 프로 스포츠경기를 관람할수 있다는 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키장은 생각보다는 따뜻했고 기대했던 것 보다는 추웠다. 관중은 눈대중으로 약 100명가량이 되어 보였다. 주말경기라는 점과 홈에서 하는 마지막 경기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을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은 바로 티켓수입으로 미쳤다. 8천원씩 100명이면 80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와야 100명인데, 평일경기에는 몇십명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 티켓수입으로는 도저히 팀을 운영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섰다. 게다가 4명의 치어리더들 까지 있었다. 어디서 수익을 내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내 추측으로는 아마 적자를 내면서 팀을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얼음 위를 자유자재로 미끄러지는 선수들과 하키라는 스포츠에 마음을 뺏겼다. 선수들이 퍽을 스틱으로 강력하게 때릴 때의 타격감 또한 매우 경쾌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하키가 가장 좋았던 점은 거짓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축구에서 최악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일부러 파울을 유도하거나 그라운드에 누워서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인데, 하키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서로 강렬하게 부딪치는 것이 용인되며 설사 파울이 난다고 해도 시간이 멈추기 때문에 아픈척을 하며 시간을 끌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느낀 바로는 하키선수들은 실제로 다치지 않았는데 아픈척을 하는 선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남자다움'을 제1의 철학으로 생각하며 경기를 하는 전사들처럼 보였다. 다소 거칠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솔직함과 꾸밈없음을 보았다. 야구는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충돌을 전제로 하지 않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욱 하키를 보면서 그간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는 심판의 재량이 무척 중요하다. 심판의 스크라이크-볼 판정 때문에 승패가 뒤바뀌는 경우가 부지기 수다. 최근에는 세이프-아웃 판정을 비롯하여 판정이 부정확하다고 생각이 되면 비디오판독을 요청할 수 있지만 여전히 스트라이크-볼 판정 만큼은 전적으로 심판의 재량이다. 물론 하키에서도 심판의 파울판정이 있고 오심이나 편파판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야구처럼 심판의 판정자체가 경기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생각이다. 이렇듯 하키가 내 마음을 끈 이유들을 보면 차라리 미식축구나 더 나아가서는 격투기를 더 좋아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나는 공을 타격하는 데에 희열과 멋을 느끼는 것 같다. 만약에 아이스하키가 퍽을 때리지 않고 가만히 미끄러뜨려서만 득점을 해야 하는 스포츠였다면 하키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축구와 야구도 역시 공을 타격하기에 마음을 뺏긴 것이리라. 하지만 미식축구는 터치다운에 성공하면 공을 한번 차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을 던지고 받는 스포츠다. 격투기의 경우에는 이따금씩 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팀 스포츠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냥 내 취향이 아닌건지 정(情)이 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스포츠 팬이다. 어느 스포츠가 더 낫다 나쁘다, 라는 우열을 가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최근에 내가 하키라는 스포츠에 빠져 하키가 더 좋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나의 하키사랑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NHL과 KHL 선수들이 불참해 김새긴 하지만) 우리나라 남녀 하키 대표팀이 좋은 경기를 하여 국내에도 하키의 인기가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렇게 되어 잠시동안의 붐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몇년, 아니 몇개월 가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핸드볼,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사격, 양궁 등 수 많은 전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저 올림픽 경기가 치루어지는 잠깐일 뿐이다. 하지만 꿈은 꿔본다. 프로 스포츠는 팀이건 선수건 '상품화'를 시켜야 소비가 된다. 하지만 국내의 비인기종목은 상품화를 시키기에는 금전적으로나 저변적으로나 부족한 점이 많기에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저 하키 좋아해요" 라고 했을 때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가 뜨는 날이 오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