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다.

by 관리자 posted Jan 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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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속보, 스포츠] 2003년 01월 07일 (화) 09:30

"뛸 팀만 제대로 갖춰 있었어도 우리가 저 자리에서 뛰고 있었을 텐데..."

3일 아이스하키 한국리그 한라위니아 대 동원드림스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이 있었던 목동 아이스 링크. 예선 때와는 다르게 많은 관중들이 모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던 관중들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던 4명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전 현대 오일뱅커스 코치와 선수들. 지난해 12월 31일 팀 해체로 인해 '오일뱅커스'라는 이름을 걸고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이들은 이날 부문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목동 아이스링크를 찾았다.


  

▲ 오일 뱅커스 김증태 코치  

ⓒ2003 SP 김진석
김증태 코치는 "이재현 총감독님 등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인수하겠다는 기업은 없다"며 "최악의 경우 스폰서가 결정날 때까지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대관을 허락한다면 저녁 8시 이후라도 연습을 할 생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코치는 "스폰서가 구해지면 그 기업이름을 걸고 나가겠지만 정 안되면 대관을 해줄 '목동아이스링크' 이름을 걸고라도 나가야 하지 않겠냐"며 "선수들만 모이면 대회에는 참가할 수 있다"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어 "동계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는 강원도를 기반으로 하는 '강릉 시청' 혹은 기업 등에서 인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내 모처에서 해단식을 갖은 뒤 경기장으로 왔다는 김 코치와 선수들은 이번 시즌을 회상하면서 힘겨웠던 하루하루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김 코치는 "팀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상태였는데 명예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개인 종목이면 벌써 끝났을텐데 단체 종목이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면서 이겨냈다"며 "우여곡절도 많았고 어떻게 보면 선수들 추스르기 바빴을 정도였는데 이런 가운데 정규리그 3위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베스트 6상과 수비상을 받은 장종문 선수는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해져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등 연습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면서 "결국 체력적으로 문제 느끼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지 않겠냐며 서로 독려했고 결국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베스트 6상, 득점, 포인트 상을 휩쓴 김경태 선수는 "23명이었던 선수가 마지막엔 16명뿐이었다"며 "성적 안 나올 땐 마음을 졸이기도 했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인수할 기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거의 매일 하던 운동을 일주일에 3,4일 밖에 하지 못했다"면서 "그것도 장비를 아끼기 위해 제대로 못했다"며 한숨쉬었다.


최다 보조(어시스트)상을 수상한 백승훈 선수는 "비 시즌 동안 체력훈련을 못해서 보통 리그 중에 시합 뛰고 다음날 연습을 하는데 우리는 아예 연습을 하지 않고 시합만 뛰었다"며 "보통 스틱은 3일에 한 번씩 바꾸는데 15일 정도까지 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백 선수는 "배팅 때릴 때 스틱이 잘 나가기 때문에 연습기간 중엔 장비 아끼기 위해 때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즌을 마친 이들에게 내일은 보장돼 있지 않다. 그나마 김 코치와 장 선수, 김 선수는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돼 태릉선수촌에 입촌한다. 또한 이들을 포함 우수한 몇 선수는 타 팀에 스카웃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백 선수 등 나머지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업을 모색하거나 군 입대를 해야 한다.


  


▲ 장종문 선수가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2003 SP 김진석
김증태 코치는 "아시안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인수할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선수라도 목동 링크에서 함께 연습하려고 한다"며 "오늘 해단식에서 선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따라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경태 선수는 "선배들이 운동한다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날 경기는 패널티샷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라 위니아가 승리를 챙겼다. 바로 이어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얼음판으로 향하던 세 선수들과 문희상 아이스하키 연맹 회장이 만났다.


문 회장은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문 회장은 "여러 기업과 상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액션을 보인 기업은 제로"라며 "안타깝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현대 오일뱅커스. 지난달 31일 마지막 경기 뒤 락커룸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던 선수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날 만난 김 코치와 선수들은 얼음판에 복귀해 스틱을 힘껏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핏속에 얼음이 흐르고 있는 것'같을 정도로 얼음판을 사랑한다는 김증태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 운영비를 반 이하로 줄이고서라도 스폰서를 해준다면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겁니다. 31일부터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비단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작은 불빛이라도 있다면 잡고 싶습니다."


현대 오일뱅커스는...  

97년 4월 창단한 현대오일뱅커스는 2000년 한국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준우승을 달성하는 등 한라위니아와 함께 실업 최강의 자리를 굳게 지켜왔다.
하지만 2002년 말, 구단 측은 회사 내부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홍보효과까지 미비해 2002 한국리그를 끝으로 팀을 해체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퇴직금까지 받은 선수들은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번 리그를 치른 것이다. 이들은 다른 기업에서 팀을 인수하지 않은 한 우수 선수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1, 2년차 선수들 중 우수 선수는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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