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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환 posted Sep 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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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선수 30명 ‘모빌 엣지’ 창단



  





“얼음판의 반란
지켜보라”

‘미치도록 뛰고 싶었다.’ 해체된 실업팀과 대학 선수들이 단지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어 ‘외인구단’을 만들었다. ‘모빌
엣지’ 선수들이 8일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원대연기자

      


아이스하키에 ‘공포의 외인구단’이 등장했다.


8일 새벽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 링크에 들어서자마자 ‘마∼’ 하는 스케이트날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귓전을 때렸다. 늦여름인데 입에서 서리가 나오며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링크 위의 선수들은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 있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유니폼. 현대 오일뱅커스라고 쓰인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있는가 하면 동원 드림스, 대학 유니폼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은 누굴까. “그저 아이스하키에 미친 사람들이죠.” 최고참
선수이자 플레잉코치인 현대 출신 박경운(34)이 한마디 툭 던진다.



이들은 한국아이스하키의 ‘아웃사이더’들.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해체된 실업팀 현대 오일뱅커스, 동원 드림스 선수들과 실업팀에 가지 못한 대학선수들이다. 한라 위니아에서 뛰다 군에 입대한
이종훈 등 공익근무요원도 10명이나 된다.


이들이 뭉치게 된 계기는 바로 하나, 아이스하키를 잊을 수 없어서였다.


팀 해체 후 오갈 곳 없게 된 이들은 잠깐 인라인하키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인라인하키로는 운동욕구를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현대 출신인 박진홍과 백승훈이 앞장서 선수들을 불러 모은 게 약 3개월 전.


이들은 1주일에 두 번씩 목동링크와 안양링크에 모인다. 2시간에 14만원 정도인 링크 대관료는 각자 주머니를 털어 댄다. 유니폼과 장비 모두 예전에 쓰던 낡은 것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희소식이 들렸다. 아이스하키 동호인인 한 벤처사업가가 일체의 훈련비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멀티미디어 프로덕션인 R&I의 대표이사인 김지욱씨(37)는 “나도 아이스하키
마니아인데 이 사람들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급은 없지만 마음놓고 운동하게 된 것만도 다행. ‘모빌 엣지(Mobile Edge)’라고 팀이름도 지었다. 사령탑은 전 현대감독이었던 박현욱씨(39). 팀 해체 후 할인마트에서 가게를 꾸려온 박씨는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전화하고 사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며 웃었다. 그 역시 월급 없는 자원봉사다.



‘모빌 엣지’의 인원은 30명.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허락을 얻어 이달 말 선수등록을 하고 다음달 8일부터 열리는 종합선수권대회와 11월 열리는 한국리그에도 참가한다.


오기로 똘똘 뭉쳐서인지 이들의 전력은 무섭다. 최근 연습경기에서 경희대를 10-1로 눌렀을 정도. 동원 드림스 출신의 윤태웅은
“월급 받고 뛰는 선수들, 우리한테 지면 얼굴 못 들걸요”라며 자신만만해했다.


“실업팀이 다시 생기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아이스하키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조그만 자영업으로 아이 셋을 키우는 박경운은 “다음달 종합선수권대회 때 큰딸 세연이가 응원하러 온다고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