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60㎞ '퍽' 맞으면 "억" 소리 절로

by 드림스77번 우팀장 posted Nov 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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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60㎞ '퍽' 맞으면 "억" 소리 절로

[조선일보 강호철 기자]

수문장(守門將). 문지기. 모두 골키퍼(Goal Keeper)의 다른 말이다. 실점을 막는 최후의 보루. 그러나 중요성에 비해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조금만 못하면 패배의 멍에를 혼자 뒤집어 쓴다. 공에 맞아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기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무거운 장비에 한 게임을 뛰고 나면 살이 쭉쭉 빠지는 그들. 공격수와 1대1로 맞설 때의 스트레스는 천만근의 무게로 가슴을 짓누른다. 축구, 아이스하키, 하키, 수구, 핸드볼 등 5개 구기 종목 골키퍼들의 세계를 시리즈로 엮는다.

“편하지 않으냐고요? 한 경기 뛰면 몸무게가 2㎏ 이상 빠져요.”

12년 동안 국가대표팀 골문을 지키고 있는 안양 한라의 골키퍼 김성배는 ‘골키퍼는 체력 소모가 덜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골키퍼가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죠? 사실은 계속 퍽을 쫓아 움직이고 있어요. 체력 소모는 플레이어와 비슷해요.”

아이스하키는 가장 빠르고 격렬한 구기종목이다. 미끄러운 얼음판에서 불과 2, 3초 사이에 공수 전환이 이뤄진다. 시속 150~160㎞ 이상의 속도로 오가는 퍽은 시선이 따라잡기도 버겁다.

빠르기가 지배하는 빙판의 세계에서 아이스하키 골키퍼는 이방인 같은 존재다.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겹겹이 보호장비를 차고 있다. 스틱을 뺀 장비 무게만 해도 20㎏을 넘는다. 일반 플레이어 것보다 10㎏ 이상 무겁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름 7.62㎝의 딱딱한 원형 압축고무로 만들어진 퍽은 스틱에 제대로 걸리면 총알과도 같은 위력으로 골문을 향해 날아든다. 일반 플레이어들의 스틱과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도 골키퍼를 위협하는 ‘흉기’다. 더욱이 무조건 빈틈을 노리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아이스하키에선 골키퍼도 슛의 표적이다. 골키퍼를 맞고 나오는 리바운드 상황에서 득점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골키퍼들은 순간적이고 예고되지 않은 공격에 재빨리 반응해야 한다. 미끄러운 빙판에서 몸을 움직이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필수. 반사신경과 민첩성을 유지하기 위해 단거리 왕복달리기와 넘어지고 일어나는 훈련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또 앞뒤 스케이팅을 위주로 하는 플레이어와는 달리 방어자세를 유지한 채 옆쪽으로 오가는 스케이팅에 익숙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 공격수와의 수읽기라는 게 골키퍼들의 말이다.

“한 곳만 수비가 뚫려도 눈깜짝할 새 상대 팀이 골문까지 쇄도하죠. 일대일 상황도 많이 겪어요. 만약 상대의 동작과 마음을 미리 읽지 못한다면 십중팔구 골을 먹게 돼요. 사람이 퍽보다 빠를 수는 없거든요.”

아이스하키에서 3대7의 전력 열세를 골키퍼의 능력으로 대등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야구의 구원투수처럼 ‘세이브(Save·슛을 막아낸 횟수)’와 방어율로 골키퍼의 능력을 수치화하기도 한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경우, 연봉 상위랭커에 골키퍼가 어엿하게 자리잡고 있다. 도미니크 하섹(체코) 패트릭 로아(캐나다·은퇴) 등은 700만~800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마리오 르뮤, 웨인 그레츠키에 필적하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정반대다. 대부분 빙판을 질주하는 플레이어를 선호하고 무거운 장비를 견뎌내야 하는 골키퍼를 외면한다. 최소한 팀당 2명은 있어야 하지만 1명인 팀도 있다. 골키퍼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맡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훈련도 쉽지 않다. 올해 강원랜드 골문을 책임지고 있는 손호성 역시 중3 때부터 수문장을 맡았지만, 대학 입학 후 하루 8시간씩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고 나서야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했다. “실수가 곧 실점으로 연결되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상대의 결정적인 슛을 막아낼 때 그 희열은 공격수가 골을 터뜨릴 때 느끼는 기분 이상일 겁니다.”


(강호철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de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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