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송동환선수기사 (군대가는군ㅜㅠ 하키는 특례않주나)

by 드림스77번 우팀장 posted Mar 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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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006-03-21 14:02

[스포츠서울]



이번 겨울은 한국의 동계스포츠가 유난히 각광을 받았다. 쇼트트랙은 2006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6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피겨요정’ 김연아는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중·일 빙판삼국지’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서 사상 처음으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안양 한라의 선전이다. 안양 한라는 2005~2006시즌 당초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으로 전통의 일본 명문팀들을 제치고 리그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등 한국 아이스하키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돌풍, 그 중심에 ‘코리안 로켓’ 송동환(25)이 있었다. 175cm의 키에 77kg의 몸무게로 보디체크 등 몸싸움이 극심한 아이스하키 선수로는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만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지능적인 플레이는 당장 유럽 리그에서 활동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오는 30일 군에 입대하기 때문에 물찬 제비처럼 빙판 위를 누비는 모습을 당분간은 볼 수 없다. 그런 아쉬움은 긴 인터뷰로 이어졌다.


◇‘코리안 로켓’에서 ‘아시안 로켓’으로 진화

송동환은 지난해 9월 아시아리그 2005~2006시즌이 시작되기 전 “팀의 4강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득점왕과 통산 100포인트 달성을 이루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정상의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그런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무슨 수로 일본의 벽을 넘겠냐며 코웃음을 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시즌을 모두 마친 지금 그는 3가지 목표를 모두 이뤘다. 한라가 시즌을 2위로 마치고 처음으로 아시아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또 그는 올시즌 모두 31골을 쓸어담으며 사토 마사시(29골·일본제지 크레인스) 등 아시아 최강 일본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에 오르는 최초의 한국선수가 됐다. 당연히 개인통산 100포인트 달성도 이뤘다. 역시 한국 선수 최초다. 어시스트도 31개나 기록해 아시아리그에서 유일하게 ‘30-30클럽’(골-어시스트)에 가입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올시즌은 그의 아이스하키 인생에서 최고의 해였다.


◇초청선수로 일본 올스타전을 평정

“개인적으로 아시아리그가 출범은 아이스하키에 더 열중하게된 계기가 됐다. 목표도 더 커졌고 혼자하는 플레이보다 함께 하는 팀 플레이의 중요성도 알게됐다.” 2003년 처음 아시아리그가 시작됐을 때만해도 송동환은 ‘우물안의 개구리’였다. 한국 최고의 골게터였지만 전력이 한수 앞선 일본팀들과의 경기는 늘 부담스러웠다. 그런 그를 결정적으로 아시아의 골게터로 주목한 사건이 있었다. 2004년 1월 일본에서 있었던 일본리그 올스타전에서다. 초청선수로 나선 그는 무려 4골을 몰아넣으며 일본 아이스하키 팬들의 입을 쫙 벌어지게 만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대회 주최측은 MVP 선정 때문에 난초한 입장에 빠졌다. 누가 봐도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송동환이었지만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했던 것. 하지만 어쩌랴. 결국 송동환은 초청 선수 최초로 MVP에 올라 이름 석자를 일본 아이스하키계에 깊게 각인시켰다. 이날의 사건은 송동환이 한단계 도약하면서 아시아의 정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계기가 됐다.


◇기네스북에 오른 한경기 세계 최다득점

송동환이 처음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은 것은 광운초등학교 4학년때. 특별활동 시간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아이스하키부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광운중 2학년때 종별선수권대회에서 포인트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부터 대회에 나가면 득점왕은 그의 독차지였다.

그의 천부적인 골감각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을 정도. 98년 중국에서 벌어진 오세아니아 아이스하키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다. 태국과의 경기에서 91-0으로 승리할 때 그는 무려 33골을 쓸어담아 아이스하키 한 경기 세계 최다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우승을 다퉜는데 골득실로 우승팀이 가려지게 됐다. 한국은 마지막 태국전에서 80골 이상을 넣어야 우승이 가능했다. 그래서 경기전 태국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쉴새없이 골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태국에는 미안한 마음이다”라는 게 그의 후일담.

가장 힘겨웠던 시절은 2003년. 그해 동원에 입단한 그는 코리안리그에서 신인왕과 MVP는 물론 베스트6, 10-10상(골-어시스트) 등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실업무대에 입성했지만 곧 팀이 해체되면서 졸지에 공중에 붕 뜨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안양 한라가 곧 그를 영입했지만 소속팀이 해체되는 아픔은 지금도 가슴 한켠 멍으로 남아있다.


◇30일 군입대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득점왕 시상식때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송동환은 지난 14일 일본 고쿠도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난다. 2-0으로 뒤지던 2피리어드 10분을 남겨두고 그가 때린 슛이 고쿠도의 골문을 꿰뚫었지만 심판은 골로 인정하지 안았다. 퍽이 골그물의 느슨하게 풀린 틈을 통과한 것을 심판이 보지 못했던 것. 이후 한라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지만 소용없었고 페널티까지 먹고 5-1로 패하고 말았다. 터무니없는 판정에 항의하는 마음에서 그는 이달 말 일본에서 있을 득점왕 시상식에 불참하기로 했다.

오는 30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는 그로서는 마지막 경기여서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러나 군입대로 인한 2년간의 공백기간은 그의 아이스하키 인생에 있어 최대 위기가 분명하다. 상무팀이나 군면제 혜택이 없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군 입대후 도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송동환은 “남는 시간에 내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겠다. 특히 체력을 키우는데 주력해 2년후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겠다”며 자신있는 표정으로 “현재 2개밖에 없는 실업팀이 몇개 더 생겨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생년월일=1980년2월4일 ●출신교=광운초-광운중-경복고-고려대 ●체격=175cm, 77kg ●별명=코리언 로켓 ●주요경력=2003년 코리아리그 5관왕(MVP, 신인왕, 최다득점, 최다포인트, 베스트6, 10-10클럽), 2003년 일본리그 올스타전 MVP, 2005~2006시즌 아시아리그 득점왕.

유인근기자 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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