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상대편이 실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 개막전이 열린 22일 오후 서울 목동링크.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0대4로 완패한 광운대 선수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광운대 선수는 모두 8명. 연세대 선수단은 24명이었다. 8명의 초미니 선수단이 대학 리그에 참가한 것 자체가 기현상이었다. 광운대 라이트 윙 황경필(4학년)은 분한 듯 “한번이라도 슈팅을 하고, 위협을 가한다는 생각으로 경기한다”면서 “진다는 생각으로 링크에 들어서지는 않는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역시 역부족. 광운대 선수들은 1피리어드 초반 대등한 스케이팅을 하는 듯했지만 10여 분이 흐르면서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졌다. 경기 중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연세대는 상대의 ‘딱한 사정’을 감안한 듯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일부러 골대 밖으로 ‘강슛’을 날리기도 했다. 광운대 학생 어머니 한 명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연신 혀를 찼다.
아이스하키는 보통 골키퍼를 제외한 5명의 선수가 1분 안팎의 시간을 뛴 뒤 5명 모두 교대한다. 체력소모가 극심한 탓이다. 따라서 한 팀에 최소 3조(15명) 이상의 선수가 필요하다. 골키퍼를 포함해 8명뿐인 광운대의 교체 선수는 달랑 2명. 이번 대회도 포기하려다가 “팀이 있는 한 대회에 나가야 한다”며 출전을 강행했다. 대회에 출전한 연세, 한양, 경희대는 20명 안팎의 선수단을 갖추고 있다. 11월2일까지 앞으로 5경기를 더 치러야 하는 광운대 입장에선 패배보다 더 두려운 것이 선수들의 부상이다.
1979년 창단한 뒤 한국 아이스하키의 한 축을 이뤘던 광운대 아이스하키팀은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강한 전력을 자랑했지만 ‘명문대’의 우수 고교 선수 독점이 계속되면서 최근엔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력도 크게 약화됐고, 스스로 팀을 떠나는 선수도 있었다. 광운대는 지난해 10월부터 28게임 연속 패배를 기록 중. 패배가 이어지면서 학교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학교 측은 올해 아이스하키팀에 아예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았다. 8명의 광운대 팀원 중 5명이 4학년이므로 내년엔 선수 3명이 달랑 남게 된다. 한 학교 관계자는 “팀의 미래에 대해 학교 당국도 고심 중”이라면서도 “팀 해체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잘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최진철 광운대 감독은 팔짱을 끼고 묵묵히 빙판만 쳐다봤다. 그는 작전 지시를 하지 않았다. “8명의 선수가 한 경기를 소화한 것만 해도 대단하죠. 1분 뛴 뒤에는 3~4분을 쉬어야 하는데… 더이상 뭘 요구하겠어요.” 최감독은 피리어드 사이의 휴식시간(10분)이 끝난 뒤 한참 후에 선수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잠시라도 휴식시간을 벌기 위한 편법이었다”고 했다.
경기장을 찾은 이 학교 신문방송 전공 학생 3명은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상대팀은 선수 전원을 바꾸는데 우리학교는 교체도 못하니까요.” 학생들은 “광운대하면 광운공대와 아이스하키팀 생각이 나지 않느냐”면서 “30년 하키팀의 전통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