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아시아체육기자연맹회장,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연세체육회장…, 박갑철 회장의 명함이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는 '종심', 일흔의 나이다. 열정만큼은 이팔청춘이 부럽지 않다. 체육기자 출신인 그는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 40여년간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한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최근 아시아체육기자연맹회장에서 물러났다. 종신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22년 전인 1990년 그는 아시아체육기자연맹의 수장이 됐다. 다섯 차례 선거에서 경쟁 상대는 없었다. 물러날 때인 것 같아 이달 초 쿠웨이트에서 열린 제16차 아시아체육기자연맹 정기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비웠지만 새롭게 회장으로 선출된 쿠웨이트 출신의 알 카나이 회장의 제안으로 전 회원국의 기립박수로 종신 명예회장에 올랐다.
그의 입지가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였다. 박 회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적인 개최의 산파역을 했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87년 한국의 정세 불안을 제기하며 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검토했다. 그는 그 해 김운용 IOC 전 부위원장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 국제체육기자연맹 총회를 유치했다. 냉전시대 동서의 모든 회원국이 참석, '서울결의문' 채택을 이끌었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IOC도 전세계 언론의 결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추진력이 도화선이 돼 그는 국제체육기자계의 주류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박 회장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아시아 국가간에는 의리와 신뢰성이 있다. 하지만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이번 총회에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더 편안할 것으로 판단했다. 노병은 사라지지 않지만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시아체육기자연맹회장은 내려놓았지만 마지막 과제가 남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 최고의 인기 종목이다. 박 회장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15대와 16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지냈다. 2005년 20대 회장에 다시 올라 2009년 4선에 성공했다. 현재 21대 회장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투명한 행정, 공정한 경쟁, 대표팀 경기력 향상이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올해 르네상스를 맞았다. 세계아이스하키주니어선수권대회 디비전2 우승, 세계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 디비전1 그룹B 우승을 차지했다. 디비전1 그룹A 승격도 일궈냈다.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도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2 그룹B에서 3위를 차지했다. 아쉬움은 있다. 남자대표팀이 지난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평가는 달랐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HHF)은 '한국은 더 이상 쉬운 상대가 아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비록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한 최종예선 진출이 무산됐지만 한국 아이스하키는 밝은 미래를 보여줬다. 자국에서 열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전망을 밝혔다'고 분석했다.
성과는 또 있다.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사상 처음으로 아이스하키 선수 10명을 선발했다. 그동안 군 복무기간에 스틱을 잡지 못하며 군 입대와 동시에 은퇴하거나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던 선수들에게 새로운 문이 열렸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는 다음달 열린다. 박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최후의 돌을 놓기 위해 마지막 임기를 꿈꾸고 있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이 없다. 르네 파젤 IIHF 회장은 최근 "한국 아이스하키가 세계 랭킹 18위 내에 들 경우 개최국 자동 출전권 부여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한국의 랭킹은 남자 28위, 여자 26위다.
박 회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최근의 상승세라면 12위내 진입도 가능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남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디비전1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실력은 20위권 안이다. 충분히 자신있다"며 "파젤 회장이 얘기한 보너스 출전(18위내 진입)은 99.9% 달성 가능하다. 우리의 목표는 자력 출전"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아이스하키는 다른 스포츠와 환경이 다르다. 이중국적 해결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장의 꿈과 열정은 살아있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