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ut=1&name=/news/sports/200805/20080527/85767101.htm
돌아온 '아시안 로켓', 안양 한라 송동환
2008-05-26 09:07
- 전보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네요?
세달 만에 만나는 송동환(28) 선수를 보자마자 튀어나온 말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인터뷰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그와 양재역 부근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그래요. 체력을 유지하려면 웨이트가 중요해요."
그래서 그런지 와이셔츠 차림의 그는 한낮의 햇빛아래 유난히 몸이 탄탄해 보였다. 병역의 공백기를 마무리하면서 몸만들기에 부쩍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모습이다.
"가끔 시간날때마다 등산을 가기도 합니다. 이제 제대를 했으니 선수로서의 앞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요."
한국 아이스하키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결정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송동환은 주니어 시절부터 항상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현역 최고의 선수다. 그런 그가 지난 05-06 아시안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소속팀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킨 뒤 시즌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해결해야 할 병역의무를 하루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3일, 26개월간의 공익근무를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 입대는 언제 한 건가요?
"2006월 3월 30일이었어요. 3월 15일에 아시안리그가 끝나고 보름만에 갔죠. 그 전부터 병역을 빨리 마치고 싶어 2005년에 입대할 생각이었는데, 좋은 선수들도 많이 들어왔고 전력도 보강됐으니 1년 더 뛰는 것이 어떠냐고 팀에서 권유를 해서 1년이 늦어졌죠. 05-06시즌에 팀성적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아시안리그 득점왕도 했으니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것 같아요."
- 26개월 동안 몸 관리는 어떻게 해왔나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주로 운동은 꾸준히 해왔어요. 스케이트는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때문에 많이 타지는 못하고, 저녁시간에 틈내서 스케이팅 연습도 하고, 시간이 있으면 전 소속팀 연습시간에도 참여해 함께 운동하기도 하고."
- 그동안 안양 한라 선수들과 계속 교류가 있었나보죠?
"그래도 국내에서 홈경기를 치를 때는 항상 예전처럼 팀에 가서 팀원들도 만나고, 경기도 모두 지켜보고 했어요. 직접 들아가서 경기를 뛸 수는 없었지만. 떠나기 전이나 사실 별로 다른게 없었어요."
- 아이스하키는 특히 군대에 가면서 그만두는 선수들도 적지 않은데, 2년이 넘는 공백기간 동안 '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을텐데요.
"솔직히 나이도 더 들었고 체력이 2년 전보다 향상되진 않았겠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빙판 위가 아닌 밖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오랫동안 지켜보다보니 게임의 흐름을 읽는다든지, 전체를 넓게 보는 시야는 더 좋아졌어요. 지금 경기에 나서도 예전만큼의 실력을 보여줄 자신은 충분합니다. 단지 제 몸이 실전에 얼마만큼 쉽게 적응할지는 솔직히 빨리 시험해보고 싶어요. 저도 궁금하거든요."
조용한 말투의 그는 하키선수로서 자신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힘이 실렸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겪은 장기간의 공백이 자신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하루라도 일찍 확인하고 싶은 조바심이 나기도 할테다.
/ 아시아 올스타전 MVP,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한경기 최다골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아 /
- 아이스하키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봄방학 때였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했고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축구부는 없고 아이스하키부가 있었어요. 운동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느라 1년을 보낸 다음 허락을 받아 시작하게 됐습니다."
- 국가대표선수로 처음 발탁된건 언제였죠?
"고등학교 1학년(경복고) 때부터 주니어 대표로 뽑힌 뒤로 3년 동안 주니어 대표선수로 활동했어요. 대학교(고려대)에 들어간 뒤부터 국가대표로 뽑히기 시작했구요. 중간에 잠깐 부상이 있을때 빼고는 계속 대표팀에서 저를 뽑아주셨어요."
- 선수생활하면서 치른 수많은 경기 중에 어떤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나요?
"2004년에 일본에서 열렸던 아시안리그 올스타전이에요. 이 대회 참가를 통해 송동환이라는 이름을 우리나라보다 하키수준이 훨씬 앞서 있던 일본에 널리 알릴 수 있었어요. 지금도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보다 제 팬들이 더 많을 정도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주니어대표시절인 1998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태국을 상대로 33골을 넣었던 때입니다. 미안하긴 했지만 그때 상황이 최대한 많은 골 차이로 이겨야했던 경기였어요. 결국 91대 0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코어로 이겼죠."
이 대회에서 송동환의 33골은 아이스하키 국제경기사상 한경기 개인최다골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그의 유니폼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하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
지난 4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디비전 I)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은 5전 전패의 성적으로 디비전 II로 강등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네덜란드 전에서 승리할 경우 디비전 I에 잔류할 수 있었던 한국팀은 59분까지 앞서던 이 경기에서 종료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허용한 뒤, 연장전에서 석패했다. 이 대회를 위해 지난달 발표됐던 대표팀 명단에는 역시 그의 이름이 없었다.
- 작년에 디비전 I로 힘들게 올라갔는데 올해 또 허무하게 떨어졌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첫째, 위기대처능력이 부족해요. 특히 중요한 시점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일단 한번 상대에게 위축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실수가 연발되죠. 유럽 또는 다른 강팀들과 경기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보니 어쩔 수가 없어요. 일본만 해도 협회차원에서 선수들이 하키선진국의 팀들과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경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거든요. 또 한가지 문제는 우리나라도 진짜 대표급 선수들만 제대로 갖춰서 나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기본적으로 최상의 멤버로 팀을 구성하기가 어렵잖아요. 이번 대회에도 저나, 장종문 선수처럼 병역의무 중인 선수들은 참가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고, 김한성 같은 선수들도 참가를 못하다보니 이런 경기결과를 보면 지켜보는 저희는 더 안타깝죠."
- 아이스하키협회의 부실한 지원도 여기에 한 몫 하는 것 같은데요.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충분한 지원을 바탕으로 양질의 훈련과 연습게임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실한 정도가 아니라 유망주 지원 프로그램도 전혀 없고, 대표팀이라고 해서 국제대회를 앞두고 경기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자 제대로 없는게 현실이에요."
- 본인이 참가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는 "글쎄요~"라는 대답과 함께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 아이스하키도 국군체육부대소속의 상무팀이 운영되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IMF사태가 터지면서 상무팀에도 예산 감축이라는 된서리가 내렸고 그 와중에 정리된 종목 가운데 아이스하키도 포함돼 있었다. 재능있는 선수들이 병역기간동안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마저 없어진 셈이다.
- 작년에도 대표팀에서 송동환 선수를 합류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무산된 것으로 아는데.
"아시안게임하고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해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그 때 단장님이 대표팀에 제가 꼭 필요하다고 여러방면으로 알아보셨는데 결국 방법이 없었어요. 굳이 나가려면 휴가기간을 쓸 수 밖에 없는데 훈련도 못하고 대회참가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없던 일로 된거죠."
- 동계올림픽 유치가 두 번이나 무산됐고, 2018년에 또 유치신청을 할 것 같은데, 아이스하키 선수로써 어떤 생각이 드나요?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공만 한다면야 물론 실업팀도 늘고, 상무팀도 생길거고, 이런저런 국가차원의 지원이 많이 늘겠죠. 나가노 동계올림픽때 일본처럼 외국선수들 귀화도 많이 시킬 겁니다. 현재 실력으로 올림픽 경기에 나가봐야 국제적인 망신만 당할테니까요. 잘 됐으면 하는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현실적인 여견을 따져보면 어렵지 않나 싶어요. 동계 최고인기종목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기반이 약하잖아요. 비인기 종목이고. 같은 아시안리그의 일본과 비교해봐도 모든 면에서 아직 부족한게 많습니다. 일단 팀이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하고요, 그래서 선수층이 넓어져야 합니다. 대학 이후 선수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 누가 아이스하키를 하려고 하겠어요?"
우리나라에는 현재 안양 한라와 강원랜드 하이원, 단 2개의 실업팀만이 유지되고 있다. 올해 광운대 아이스하키팀이 해체되면서 대학팀의 수는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경희대 4개로 줄었다. 고교팀은 벌써 몇 년 전부터 그 수가 줄고 있다.
/ 한국에서는 내가 최고. 더 넓은 해외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
- NHL경기는 즐겨 보나요?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보는 편이죠.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제터버그 선수의 플레이를 좋아해요. 제터버그와 다축 콤비의 공격력은 정말 강력하기도 하고, 특히 NHL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는 유럽 선수라 경기를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스탠리컵 결승전에서도 디트로이트가 우승할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예상에 피츠버그 펭귄스가 우승할 것이라며 나는 본능적으로 맞받아쳤다.
- NHL진출에 대한 꿈을 꾼 적은 없나요?
"NHL에 들어가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몰랐던 어렸을 때는 당연히 그런 꿈을 꿨죠. 지금은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NHL과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 경기스타일 자체가 거친 북미스타일이 아닌 기술을 중시하는 유럽스타일의 하키를 추구하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해외진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제 스타일에 맞는 유럽리그쪽을 관심있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 유럽리그에는 NHL로 바로 진출하는 선수들도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리그도 많은데 이런 리그에서도 통할 자신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스웨덴의 엘리트리그나 체코의 엑스트라리그, 핀란드의 SM리그 같은 경우, 솔직히 기술이나 경기에서의 시야, 패싱능력에 있어서는 저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최대 장점은 짧은 순간의 찬스를 마무리 짓는 정확한 골결정력입니다. 특히 패스가 좋은 유럽선수들과 한 팀에서 뛴다면 골을 넣는 능력만큼은 저를 능가할 선수가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이뤄온 그는 훨씬 이전부터 아시아 너머의 빅리그들을 마음에 품어왔다고 말해오곤 했다. 사실 그의 프로필만 가지고도 훨씬 일찍부터 많은 기회들이 있었을 수 있음에도, 한국 아이스하키의 낮은 인지도와 빅리그에 대한 미약한 정보력이 그를 아시아무대에 가둬놓은듯 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스쳤다.
- 아시안리그에서 일본팀들을 많이 상대해봤을텐데, 한국팀과 일본팀은 어떤 점이 달라요?
"팀의 지원체계에서 큰 차이가 있죠. 같은 리그에서 계속 마주치다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팀도 일본 수준에 많이 근접했지만, 초창기에는 일본에 비해 모든 면에서 팀의 지원방식이 한참 뒤떨어졌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아시안리그가 창설되면서 일본보다는 우리나라가 더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대표팀간 경기에서도 10골 이상 차이로 패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쉽게 지지 않아요. 그게 경험의 차이입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싸웠다면, 이젠 지속적으로 상대하면서 지더라도 강팀인 일본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거죠."
- 지난 시즌 안양 한라팀이 참담한 성적으로 무너졌는데, 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팀에서도 제가 자리를 비운 2년 동안 득점력이 어느 정도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부족한 공격력은 아무래도 용병들이 메워줘야 하는데. 보기에 어땠나요?
"그동안 체코출신 감독님을 모셔오고 체코출신 용병들과 함께 리그를 치러왔어요. 아시아 팀의 경기에는 체력과 힘이 우선시되는 북미스타일보다 아무래도 기술위주의 유럽스타일의 하키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이들과 함께 좋은 성적도 내봤고 우리 선수들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울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즌 강원랜드 하이원팀이 북미출신 선수들을 데려와 아시다시피 굉장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어요. 북미출신이라고 해서 단지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고 기술도 상당히 뛰어납니다. 아마 안양 한라도 다음 시즌에는 용병체제에 뭔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 우리나라의 아이스하키가 저변이 약하긴 하지만, 지금 한 팀에 용병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저도 지금 용병의 수가 좀 많다는 생각을 해요. (한 팀에 4명의 용병 허용) 용병들이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니까요. 하지만 아시안리그의 창설목적도 그렇지만 팀들이 전체적으로 수준을 끌어올려 궁극적으로는 용병없이 아시안리그도 치르고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시즌 아시안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강원랜드의 알렉스 김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케이팅이나 스피드, 득점력 등 전체적으로 기량이 훌륭한 선수죠. 단지, 개인플레이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더군요."
- 우리나라에 자신보다 뛰어난 포워드를 본 적이 있나요?
한참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제 포지션에서는 그래도 아직까지 저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는 누군가요?
"안양 한라팀에서는 1년 후배인 김도윤선수와 가깝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같이한 강원랜드의 송치영 선수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 이제 병역을 마쳤는데, 선수로서 최종 종착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득점왕도 해봤지만 아시안리그에서 우승을 한번도 못했는데 안양 한라가 챔피언에 오르는 모습을 꼭 보고싶고, 올해는 부상없이 경기감각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게 우선이에요.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드시 해외무대에 진출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생각입니다."
송동환 선수는,
1980년 2월 4일 생으로 광운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해, 광운중-경복고-고려대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득점왕을 휩쓸다시피 한 그는 175cm라는 크지않은 키에도 탁월한 순발력과 골감각을 바탕으로 주니어 대표, 국가대표의 단골 멤버였다. 고려대 2학년 때 참가한 99-00시즌 코리안 리그에서 정규리그 MVP와 공격포인트상을 수상하며 한국 아이스하키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했고, 2년 뒤인 01-02 코리안 리그에서 고려대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지금은 해체된 동원 드림스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해 그 해 신인왕, MVP, 베스트6, 10-10클럽 등, 상을 모조리 휩쓸면서 실업무대에서 화려한 첫발을 내딛었다.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 등 국제대회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골감각을 선보이던 그는 동원 드림스의 해체로 안양 한라로 이적해 2004년 아시안리그 올스타전에서 4골을 폭발시켜 내로라하는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면서 일본 팬들을 상대로 충격적인 신고식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샵에 걸린 그의 번호와 이름이 붙은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팬들의 선물세례도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05-06시즌에 31골 3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아시안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동시에 개인통산 100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화려한 득점력으로 '코리안 로켓'으로 불리던 그는 일찌감치 아시아를 뛰어넘은 명실상부한 '아시안 로켓'이다.
< 채지석 객원기자 http://scblog.chosun.com/josh11>
돌아온 '아시안 로켓', 안양 한라 송동환
2008-05-26 09:07
- 전보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네요?
세달 만에 만나는 송동환(28) 선수를 보자마자 튀어나온 말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인터뷰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그와 양재역 부근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그래요. 체력을 유지하려면 웨이트가 중요해요."
그래서 그런지 와이셔츠 차림의 그는 한낮의 햇빛아래 유난히 몸이 탄탄해 보였다. 병역의 공백기를 마무리하면서 몸만들기에 부쩍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모습이다.
"가끔 시간날때마다 등산을 가기도 합니다. 이제 제대를 했으니 선수로서의 앞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요."
한국 아이스하키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결정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송동환은 주니어 시절부터 항상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현역 최고의 선수다. 그런 그가 지난 05-06 아시안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소속팀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킨 뒤 시즌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해결해야 할 병역의무를 하루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3일, 26개월간의 공익근무를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 입대는 언제 한 건가요?
"2006월 3월 30일이었어요. 3월 15일에 아시안리그가 끝나고 보름만에 갔죠. 그 전부터 병역을 빨리 마치고 싶어 2005년에 입대할 생각이었는데, 좋은 선수들도 많이 들어왔고 전력도 보강됐으니 1년 더 뛰는 것이 어떠냐고 팀에서 권유를 해서 1년이 늦어졌죠. 05-06시즌에 팀성적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아시안리그 득점왕도 했으니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것 같아요."
- 26개월 동안 몸 관리는 어떻게 해왔나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주로 운동은 꾸준히 해왔어요. 스케이트는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때문에 많이 타지는 못하고, 저녁시간에 틈내서 스케이팅 연습도 하고, 시간이 있으면 전 소속팀 연습시간에도 참여해 함께 운동하기도 하고."
- 그동안 안양 한라 선수들과 계속 교류가 있었나보죠?
"그래도 국내에서 홈경기를 치를 때는 항상 예전처럼 팀에 가서 팀원들도 만나고, 경기도 모두 지켜보고 했어요. 직접 들아가서 경기를 뛸 수는 없었지만. 떠나기 전이나 사실 별로 다른게 없었어요."
- 아이스하키는 특히 군대에 가면서 그만두는 선수들도 적지 않은데, 2년이 넘는 공백기간 동안 '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을텐데요.
"솔직히 나이도 더 들었고 체력이 2년 전보다 향상되진 않았겠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빙판 위가 아닌 밖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오랫동안 지켜보다보니 게임의 흐름을 읽는다든지, 전체를 넓게 보는 시야는 더 좋아졌어요. 지금 경기에 나서도 예전만큼의 실력을 보여줄 자신은 충분합니다. 단지 제 몸이 실전에 얼마만큼 쉽게 적응할지는 솔직히 빨리 시험해보고 싶어요. 저도 궁금하거든요."
조용한 말투의 그는 하키선수로서 자신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힘이 실렸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겪은 장기간의 공백이 자신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하루라도 일찍 확인하고 싶은 조바심이 나기도 할테다.
/ 아시아 올스타전 MVP,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한경기 최다골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아 /
- 아이스하키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봄방학 때였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했고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축구부는 없고 아이스하키부가 있었어요. 운동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느라 1년을 보낸 다음 허락을 받아 시작하게 됐습니다."
- 국가대표선수로 처음 발탁된건 언제였죠?
"고등학교 1학년(경복고) 때부터 주니어 대표로 뽑힌 뒤로 3년 동안 주니어 대표선수로 활동했어요. 대학교(고려대)에 들어간 뒤부터 국가대표로 뽑히기 시작했구요. 중간에 잠깐 부상이 있을때 빼고는 계속 대표팀에서 저를 뽑아주셨어요."
- 선수생활하면서 치른 수많은 경기 중에 어떤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나요?
"2004년에 일본에서 열렸던 아시안리그 올스타전이에요. 이 대회 참가를 통해 송동환이라는 이름을 우리나라보다 하키수준이 훨씬 앞서 있던 일본에 널리 알릴 수 있었어요. 지금도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보다 제 팬들이 더 많을 정도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주니어대표시절인 1998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태국을 상대로 33골을 넣었던 때입니다. 미안하긴 했지만 그때 상황이 최대한 많은 골 차이로 이겨야했던 경기였어요. 결국 91대 0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코어로 이겼죠."
이 대회에서 송동환의 33골은 아이스하키 국제경기사상 한경기 개인최다골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그의 유니폼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하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
지난 4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디비전 I)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은 5전 전패의 성적으로 디비전 II로 강등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네덜란드 전에서 승리할 경우 디비전 I에 잔류할 수 있었던 한국팀은 59분까지 앞서던 이 경기에서 종료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허용한 뒤, 연장전에서 석패했다. 이 대회를 위해 지난달 발표됐던 대표팀 명단에는 역시 그의 이름이 없었다.
- 작년에 디비전 I로 힘들게 올라갔는데 올해 또 허무하게 떨어졌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첫째, 위기대처능력이 부족해요. 특히 중요한 시점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일단 한번 상대에게 위축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실수가 연발되죠. 유럽 또는 다른 강팀들과 경기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보니 어쩔 수가 없어요. 일본만 해도 협회차원에서 선수들이 하키선진국의 팀들과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경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거든요. 또 한가지 문제는 우리나라도 진짜 대표급 선수들만 제대로 갖춰서 나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기본적으로 최상의 멤버로 팀을 구성하기가 어렵잖아요. 이번 대회에도 저나, 장종문 선수처럼 병역의무 중인 선수들은 참가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고, 김한성 같은 선수들도 참가를 못하다보니 이런 경기결과를 보면 지켜보는 저희는 더 안타깝죠."
- 아이스하키협회의 부실한 지원도 여기에 한 몫 하는 것 같은데요.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충분한 지원을 바탕으로 양질의 훈련과 연습게임의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실한 정도가 아니라 유망주 지원 프로그램도 전혀 없고, 대표팀이라고 해서 국제대회를 앞두고 경기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자 제대로 없는게 현실이에요."
- 본인이 참가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는 "글쎄요~"라는 대답과 함께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 아이스하키도 국군체육부대소속의 상무팀이 운영되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IMF사태가 터지면서 상무팀에도 예산 감축이라는 된서리가 내렸고 그 와중에 정리된 종목 가운데 아이스하키도 포함돼 있었다. 재능있는 선수들이 병역기간동안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마저 없어진 셈이다.
- 작년에도 대표팀에서 송동환 선수를 합류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무산된 것으로 아는데.
"아시안게임하고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해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그 때 단장님이 대표팀에 제가 꼭 필요하다고 여러방면으로 알아보셨는데 결국 방법이 없었어요. 굳이 나가려면 휴가기간을 쓸 수 밖에 없는데 훈련도 못하고 대회참가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없던 일로 된거죠."
- 동계올림픽 유치가 두 번이나 무산됐고, 2018년에 또 유치신청을 할 것 같은데, 아이스하키 선수로써 어떤 생각이 드나요?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공만 한다면야 물론 실업팀도 늘고, 상무팀도 생길거고, 이런저런 국가차원의 지원이 많이 늘겠죠. 나가노 동계올림픽때 일본처럼 외국선수들 귀화도 많이 시킬 겁니다. 현재 실력으로 올림픽 경기에 나가봐야 국제적인 망신만 당할테니까요. 잘 됐으면 하는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현실적인 여견을 따져보면 어렵지 않나 싶어요. 동계 최고인기종목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기반이 약하잖아요. 비인기 종목이고. 같은 아시안리그의 일본과 비교해봐도 모든 면에서 아직 부족한게 많습니다. 일단 팀이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하고요, 그래서 선수층이 넓어져야 합니다. 대학 이후 선수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 누가 아이스하키를 하려고 하겠어요?"
우리나라에는 현재 안양 한라와 강원랜드 하이원, 단 2개의 실업팀만이 유지되고 있다. 올해 광운대 아이스하키팀이 해체되면서 대학팀의 수는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경희대 4개로 줄었다. 고교팀은 벌써 몇 년 전부터 그 수가 줄고 있다.
/ 한국에서는 내가 최고. 더 넓은 해외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
- NHL경기는 즐겨 보나요?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보는 편이죠.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의 제터버그 선수의 플레이를 좋아해요. 제터버그와 다축 콤비의 공격력은 정말 강력하기도 하고, 특히 NHL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는 유럽 선수라 경기를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스탠리컵 결승전에서도 디트로이트가 우승할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예상에 피츠버그 펭귄스가 우승할 것이라며 나는 본능적으로 맞받아쳤다.
- NHL진출에 대한 꿈을 꾼 적은 없나요?
"NHL에 들어가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몰랐던 어렸을 때는 당연히 그런 꿈을 꿨죠. 지금은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NHL과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 경기스타일 자체가 거친 북미스타일이 아닌 기술을 중시하는 유럽스타일의 하키를 추구하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해외진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제 스타일에 맞는 유럽리그쪽을 관심있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 유럽리그에는 NHL로 바로 진출하는 선수들도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리그도 많은데 이런 리그에서도 통할 자신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스웨덴의 엘리트리그나 체코의 엑스트라리그, 핀란드의 SM리그 같은 경우, 솔직히 기술이나 경기에서의 시야, 패싱능력에 있어서는 저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최대 장점은 짧은 순간의 찬스를 마무리 짓는 정확한 골결정력입니다. 특히 패스가 좋은 유럽선수들과 한 팀에서 뛴다면 골을 넣는 능력만큼은 저를 능가할 선수가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이뤄온 그는 훨씬 이전부터 아시아 너머의 빅리그들을 마음에 품어왔다고 말해오곤 했다. 사실 그의 프로필만 가지고도 훨씬 일찍부터 많은 기회들이 있었을 수 있음에도, 한국 아이스하키의 낮은 인지도와 빅리그에 대한 미약한 정보력이 그를 아시아무대에 가둬놓은듯 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스쳤다.
- 아시안리그에서 일본팀들을 많이 상대해봤을텐데, 한국팀과 일본팀은 어떤 점이 달라요?
"팀의 지원체계에서 큰 차이가 있죠. 같은 리그에서 계속 마주치다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팀도 일본 수준에 많이 근접했지만, 초창기에는 일본에 비해 모든 면에서 팀의 지원방식이 한참 뒤떨어졌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아시안리그가 창설되면서 일본보다는 우리나라가 더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대표팀간 경기에서도 10골 이상 차이로 패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쉽게 지지 않아요. 그게 경험의 차이입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싸웠다면, 이젠 지속적으로 상대하면서 지더라도 강팀인 일본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거죠."
- 지난 시즌 안양 한라팀이 참담한 성적으로 무너졌는데, 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팀에서도 제가 자리를 비운 2년 동안 득점력이 어느 정도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부족한 공격력은 아무래도 용병들이 메워줘야 하는데. 보기에 어땠나요?
"그동안 체코출신 감독님을 모셔오고 체코출신 용병들과 함께 리그를 치러왔어요. 아시아 팀의 경기에는 체력과 힘이 우선시되는 북미스타일보다 아무래도 기술위주의 유럽스타일의 하키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이들과 함께 좋은 성적도 내봤고 우리 선수들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울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즌 강원랜드 하이원팀이 북미출신 선수들을 데려와 아시다시피 굉장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어요. 북미출신이라고 해서 단지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고 기술도 상당히 뛰어납니다. 아마 안양 한라도 다음 시즌에는 용병체제에 뭔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 우리나라의 아이스하키가 저변이 약하긴 하지만, 지금 한 팀에 용병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저도 지금 용병의 수가 좀 많다는 생각을 해요. (한 팀에 4명의 용병 허용) 용병들이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니까요. 하지만 아시안리그의 창설목적도 그렇지만 팀들이 전체적으로 수준을 끌어올려 궁극적으로는 용병없이 아시안리그도 치르고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시즌 아시안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강원랜드의 알렉스 김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케이팅이나 스피드, 득점력 등 전체적으로 기량이 훌륭한 선수죠. 단지, 개인플레이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경향이 있더군요."
- 우리나라에 자신보다 뛰어난 포워드를 본 적이 있나요?
한참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제 포지션에서는 그래도 아직까지 저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는 누군가요?
"안양 한라팀에서는 1년 후배인 김도윤선수와 가깝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같이한 강원랜드의 송치영 선수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 이제 병역을 마쳤는데, 선수로서 최종 종착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득점왕도 해봤지만 아시안리그에서 우승을 한번도 못했는데 안양 한라가 챔피언에 오르는 모습을 꼭 보고싶고, 올해는 부상없이 경기감각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게 우선이에요.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드시 해외무대에 진출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생각입니다."
송동환 선수는,
1980년 2월 4일 생으로 광운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해, 광운중-경복고-고려대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득점왕을 휩쓸다시피 한 그는 175cm라는 크지않은 키에도 탁월한 순발력과 골감각을 바탕으로 주니어 대표, 국가대표의 단골 멤버였다. 고려대 2학년 때 참가한 99-00시즌 코리안 리그에서 정규리그 MVP와 공격포인트상을 수상하며 한국 아이스하키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했고, 2년 뒤인 01-02 코리안 리그에서 고려대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지금은 해체된 동원 드림스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해 그 해 신인왕, MVP, 베스트6, 10-10클럽 등, 상을 모조리 휩쓸면서 실업무대에서 화려한 첫발을 내딛었다.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 등 국제대회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골감각을 선보이던 그는 동원 드림스의 해체로 안양 한라로 이적해 2004년 아시안리그 올스타전에서 4골을 폭발시켜 내로라하는 일본선수들을 제치고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면서 일본 팬들을 상대로 충격적인 신고식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샵에 걸린 그의 번호와 이름이 붙은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팬들의 선물세례도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05-06시즌에 31골 3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아시안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동시에 개인통산 100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화려한 득점력으로 '코리안 로켓'으로 불리던 그는 일찌감치 아시아를 뛰어넘은 명실상부한 '아시안 로켓'이다.
< 채지석 객원기자 http://scblog.chosun.com/josh11>
너무 기대되네요